
전 세계가 주목하는 K-헤어, 그 중심에서 '손상모 복구펌'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하고 있는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화려했던 대형 매장 폐업이라는 위기 속에서 미용의 본질을 다시 붙잡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기술 시스템을 완성해 글로벌 무대로 나아가는 휘유헤어 제롬 대표원장의 도전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원장님,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
안녕하세요. 휘유헤어 대표원장이자 손상모 복구펌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제롬입니다.
Q. 최근 미국 뉴욕과 LA 세미나에서도 '복구펌 마스터'로 현지 디자이너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으셨잖아요. 까다로운 손상모 복구펌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엔 정말 아찔했던 기억이 하나 있어요. 미용 초창기에 고객님 머리를 완전히 망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원장님한테 정말 크게 혼났거든요. 너무 속상하고 부끄러웠지만 그 사건이 제 미용 인생을 바꾼 가장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손상모와 복구펌이라는 분야를 거의 밤낮없이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저만의 데이터가 실력으로 증명되기 시작하면서 제 이름을 건 샵을 열게 됐고, 감사하게도 '마지앤제롬'이라는 브랜드로 역삼, 청담을 넘어 대구까지 5개 지점을 확장하며 공격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미용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더 큰 꿈을 품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Q. 확실한 기술에 사업 규모까지 갖추셨으니, 이후로는 정말 막힘없이 승승장구만 하셨을 것 같아요. 실제론 어떠셨나요?
사실 겉보기엔 그랬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던 시기였어요. 너무 욕심이 앞섰던 거죠. 당시 미용 시장의 트렌드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제 방식만 고집했거든요. 결국 더 늦기 전에 제 한계를 인정하고 운영하던 매장들을 모두 정리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미용 문화를 접하며 다시 가슴이 뛰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아,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게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그때 얻은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한국으로 돌아왔고 모두가 개업을 만류하던 코로나 한복판에 압구정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코로나 시기에 압구정 한복판에서 실험적인 샵이라니 어떤 곳이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기존 미용실과는 어떤 부분이 달랐나요?
'압구정아지트'라는 대형 플래그십 매장이었어요. 코로나 시기였지만 기세로 밀어붙였죠. 인테리어를 힙합 클럽처럼 만들고 디제잉 부스를 둬서 음악을 틀었어요. 미국의 살롱 리퍼블릭을 벤치마킹해서 당시 한국에 막 생기던 공유 미용실 시스템도 가져왔고요. 테라스에는 대나무숲 포토존을 만들어서 전 직원이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겉보기엔 화려하고 힙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어요.
화려한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었지만 그게 실제 꾸준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거든요. 게다가 압구정 한복판의 대형 매장이다 보니 매달 감당해야 하는 막대한 임대료와 유지비가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압구정아지트는 2년 정도 운영하다가 샵을 정리했습니다.

Q. 정말 새롭고 화려한 시도였던 만큼 현실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으셨겠네요. 그렇게 매장을 정리하신 다음에 어떤 부분에 집중하면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셨나요?
화려한 퍼포먼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미용의 본질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텅 빈 매장에서 여러 타입의 손상모를 더 집요하게 파고들며 연구했어요. 본업에 그렇게 미친 듯이 진심으로 매달리면서도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은 저희만의 유쾌한 에너지를 잃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기술을 연구하는 정보성 콘텐츠부터 직원들과 다 같이 웃고 떠들며 위기를 버텨내는 긍정적인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올렸거든요. 그랬더니 바로 손님이 확 늘지는 않아도 저희라는 사람 자체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찐팬들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 치열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시기가 저와 동료들을 가장 단단하게 성장시킨 것 같습니다. 그때 함께 고생했던 친구들은 지금 다 너무 잘됐고요.

Q. 얘기를 쭉 듣다 보니 원장님의 실행력과 도전정신이 정말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상황 핑계 대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쌓아 올린 경험이 지금의 원장님을 만든거네요?
맞아요. 저는 일단 머릿속에 구상한 게 있으면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답을 찾는 편이거든요. 돌이켜보면 프랜차이즈 확장이나 압구정 대형 매장도 결국 제 비전을 관철하기 위한 치열한 실험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미용을 그냥 직업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큰 산업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거든요.
복구펌을 계속 하다 보니까 '이건 그냥 내 감이나 경험으로 끝날 게 아니라 확실한 구조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아주 명확해졌죠.

Q. 사실 '구조'라는 말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원장님이 생각하시는 '복구펌의 구조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가요?
제가 말하는 '구조화'는 누가 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확실한 공식을 만드는 거예요. 디자이너 개인의 감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명확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샵에서 시술받은 머리를 고객님이 집에서도 똑같이 유지할 수 있도록, 그 구조에 딱 맞는 전용 제품을 직접 개발하며 기술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체계화한 시스템을 저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웠어요. 이 매뉴얼이 널리 퍼지면 업계 전체의 수준이 올라갈 거라는 확신에 해외 세미나까지 기획하며 적극적으로 기술을 나누게 된 거죠.
Q.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그 '구조'를 확장하신 거군요. 현지에서 직접 느끼신 미국 시장의 현실과 K-헤어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나요?
일단 미국에는 아시안 미용실을 빼면 열펌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더라고요. 매직 시술 이름도 아직까지 재패니즈 스트레이트라고 부르고 있고요. 그래서 이걸 코리아 리페어 펌으로 새롭게 정의해서 제대로 교육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LA랑 뉴욕에서 현지 디자이너들을 직접 만나보니까 K헤어가 이제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하나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어요.
특히 한국의 디테일한 펌 기술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펌은 너무 어렵다거나 모발 손상이 무섭다, 특히 탈색모에는 절대 펌을 하면 안 된다는 편견도 정말 많았어요.
Q. 근데 원장님, 탈색모에 펌을 하는건 실제로도 어렵지 않나요?
사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저는 좀 다르게 봐요. 어려운 게 아니라 설계를 못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제로연화펌이에요. 탈색모라도 겁내지 않고 펌을 할 수 있도록 매뉴얼과 레시피를 체계화한 제 시그니처 교육입니다. 감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누구든 따라올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놨거든요. 딱 필요한 만큼만 연화하는 게 핵심이에요. 궁금하신 분들은 인스타그램으로 디엠 주시면 알려드릴게요.
여기에 곱슬이거나 머릿결이 부시시한 분들께는 매직 시술로 형태까지 보완할 수 있도록 제가 직접 개발한 다이아매직이나, 모발 베이스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헤어고트의 핑크고트 같은 제품들도 함께 활용하고 있어요. 고객의 모발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정확한 레시피를 계산해서 힘을 나눠 디자인해야 결과물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안전하거든요.
오는 4월 LA와 텍사스 세미나에서도 탈색모 펌은 설계하면 가능하다는 걸 많은 미용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Q. 원장님의 거침없는 행보가 미용 업계에 큰 울림을 주네요. 원장님이 꿈꾸는 미래와 최종적인 포부는 무엇인가요?
너무 뻔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이제 미용 시장에서 단순히 감각에만 의존해서는 절대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온몸으로 부딪혀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철저하게 데이터로 만들고 구조화해야 해요. 그렇게 치밀하게 자신만의 확실한 무기를 갈고 닦고 증명해 내야 세계 시장에서도 롱런할 수 있습니다. 저희 휘유는 단순히 머리를 잘하는 매장이 아니라 기술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하는 단단한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공간입니다.
제 최종 목표는 아주 명확해요. 한국의 정교한 미용 기술이 전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완벽한 장르로 인정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헤어가 단순한 시술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퍼포먼스가 되는 순간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어요.
예전에 저를 아주 오래 지켜봐 주신 단골 고객님이 세상을 흔들 남자라는 뜻으로 세흔남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거든요. 그 이름처럼 정말 세계 무대를 뒤흔들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현장에서 가위를 듭니다.

Q. 안녕하세요 원장님,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
안녕하세요. 휘유헤어 대표원장이자 손상모 복구펌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제롬입니다.
Q. 최근 미국 뉴욕과 LA 세미나에서도 '복구펌 마스터'로 현지 디자이너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으셨잖아요. 까다로운 손상모 복구펌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당시엔 정말 아찔했던 기억이 하나 있어요. 미용 초창기에 고객님 머리를 완전히 망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원장님한테 정말 크게 혼났거든요. 너무 속상하고 부끄러웠지만 그 사건이 제 미용 인생을 바꾼 가장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손상모와 복구펌이라는 분야를 거의 밤낮없이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저만의 데이터가 실력으로 증명되기 시작하면서 제 이름을 건 샵을 열게 됐고, 감사하게도 '마지앤제롬'이라는 브랜드로 역삼, 청담을 넘어 대구까지 5개 지점을 확장하며 공격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의 미용 기술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더 큰 꿈을 품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Q. 확실한 기술에 사업 규모까지 갖추셨으니, 이후로는 정말 막힘없이 승승장구만 하셨을 것 같아요. 실제론 어떠셨나요?
사실 겉보기엔 그랬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던 시기였어요. 너무 욕심이 앞섰던 거죠. 당시 미용 시장의 트렌드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제 방식만 고집했거든요. 결국 더 늦기 전에 제 한계를 인정하고 운영하던 매장들을 모두 정리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미용 문화를 접하며 다시 가슴이 뛰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아,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게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그때 얻은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한국으로 돌아왔고 모두가 개업을 만류하던 코로나 한복판에 압구정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코로나 시기에 압구정 한복판에서 실험적인 샵이라니 어떤 곳이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기존 미용실과는 어떤 부분이 달랐나요?
'압구정아지트'라는 대형 플래그십 매장이었어요. 코로나 시기였지만 기세로 밀어붙였죠. 인테리어를 힙합 클럽처럼 만들고 디제잉 부스를 둬서 음악을 틀었어요. 미국의 살롱 리퍼블릭을 벤치마킹해서 당시 한국에 막 생기던 공유 미용실 시스템도 가져왔고요. 테라스에는 대나무숲 포토존을 만들어서 전 직원이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겉보기엔 화려하고 힙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어요.
화려한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었지만 그게 실제 꾸준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거든요. 게다가 압구정 한복판의 대형 매장이다 보니 매달 감당해야 하는 막대한 임대료와 유지비가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압구정아지트는 2년 정도 운영하다가 샵을 정리했습니다.
Q. 정말 새롭고 화려한 시도였던 만큼 현실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으셨겠네요. 그렇게 매장을 정리하신 다음에 어떤 부분에 집중하면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셨나요?
화려한 퍼포먼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미용의 본질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텅 빈 매장에서 여러 타입의 손상모를 더 집요하게 파고들며 연구했어요. 본업에 그렇게 미친 듯이 진심으로 매달리면서도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은 저희만의 유쾌한 에너지를 잃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기술을 연구하는 정보성 콘텐츠부터 직원들과 다 같이 웃고 떠들며 위기를 버텨내는 긍정적인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올렸거든요. 그랬더니 바로 손님이 확 늘지는 않아도 저희라는 사람 자체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찐팬들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 치열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시기가 저와 동료들을 가장 단단하게 성장시킨 것 같습니다. 그때 함께 고생했던 친구들은 지금 다 너무 잘됐고요.
Q. 얘기를 쭉 듣다 보니 원장님의 실행력과 도전정신이 정말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상황 핑계 대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쌓아 올린 경험이 지금의 원장님을 만든거네요?
맞아요. 저는 일단 머릿속에 구상한 게 있으면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행동으로 옮기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답을 찾는 편이거든요. 돌이켜보면 프랜차이즈 확장이나 압구정 대형 매장도 결국 제 비전을 관철하기 위한 치열한 실험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미용을 그냥 직업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큰 산업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거든요.
복구펌을 계속 하다 보니까 '이건 그냥 내 감이나 경험으로 끝날 게 아니라 확실한 구조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아주 명확해졌죠.
Q. 사실 '구조'라는 말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원장님이 생각하시는 '복구펌의 구조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가요?

제가 말하는 '구조화'는 누가 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확실한 공식을 만드는 거예요. 디자이너 개인의 감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명확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샵에서 시술받은 머리를 고객님이 집에서도 똑같이 유지할 수 있도록, 그 구조에 딱 맞는 전용 제품을 직접 개발하며 기술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체계화한 시스템을 저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웠어요. 이 매뉴얼이 널리 퍼지면 업계 전체의 수준이 올라갈 거라는 확신에 해외 세미나까지 기획하며 적극적으로 기술을 나누게 된 거죠.
Q.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그 '구조'를 확장하신 거군요. 현지에서 직접 느끼신 미국 시장의 현실과 K-헤어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나요?
일단 미국에는 아시안 미용실을 빼면 열펌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더라고요. 매직 시술 이름도 아직까지 재패니즈 스트레이트라고 부르고 있고요. 그래서 이걸 코리아 리페어 펌으로 새롭게 정의해서 제대로 교육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LA랑 뉴욕에서 현지 디자이너들을 직접 만나보니까 K헤어가 이제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 하나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어요.
특히 한국의 디테일한 펌 기술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펌은 너무 어렵다거나 모발 손상이 무섭다, 특히 탈색모에는 절대 펌을 하면 안 된다는 편견도 정말 많았어요.
Q. 근데 원장님, 탈색모에 펌을 하는건 실제로도 어렵지 않나요?
사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저는 좀 다르게 봐요. 어려운 게 아니라 설계를 못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만든 게 바로 제로연화펌이에요. 탈색모라도 겁내지 않고 펌을 할 수 있도록 매뉴얼과 레시피를 체계화한 제 시그니처 교육입니다. 감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누구든 따라올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놨거든요. 딱 필요한 만큼만 연화하는 게 핵심이에요. 궁금하신 분들은 인스타그램으로 디엠 주시면 알려드릴게요.
여기에 곱슬이거나 머릿결이 부시시한 분들께는 매직 시술로 형태까지 보완할 수 있도록 제가 직접 개발한 다이아매직이나, 모발 베이스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헤어고트의 핑크고트 같은 제품들도 함께 활용하고 있어요. 고객의 모발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정확한 레시피를 계산해서 힘을 나눠 디자인해야 결과물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안전하거든요.
오는 4월 LA와 텍사스 세미나에서도 탈색모 펌은 설계하면 가능하다는 걸 많은 미용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Q. 원장님의 거침없는 행보가 미용 업계에 큰 울림을 주네요. 원장님이 꿈꾸는 미래와 최종적인 포부는 무엇인가요?

너무 뻔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이제 미용 시장에서 단순히 감각에만 의존해서는 절대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온몸으로 부딪혀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철저하게 데이터로 만들고 구조화해야 해요. 그렇게 치밀하게 자신만의 확실한 무기를 갈고 닦고 증명해 내야 세계 시장에서도 롱런할 수 있습니다. 저희 휘유는 단순히 머리를 잘하는 매장이 아니라 기술의 본질과 시스템을 이해하는 단단한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공간입니다.
제 최종 목표는 아주 명확해요. 한국의 정교한 미용 기술이 전 세계 시장에서 하나의 완벽한 장르로 인정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헤어가 단순한 시술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퍼포먼스가 되는 순간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어요.
예전에 저를 아주 오래 지켜봐 주신 단골 고객님이 세상을 흔들 남자라는 뜻으로 세흔남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거든요. 그 이름처럼 정말 세계 무대를 뒤흔들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현장에서 가위를 듭니다.